우리사회 이야기50 나의 편파적인 한국현대사 – 나의 대통령 ⑤ 김대중 대통령 1. 1997년 대선 –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김대중은 세 번 낙선한 대통령 후보였다. 감옥에 갇혔고, 가택연금을 당했고, 암살 시도도 겪었다. 전두환 정권 하에서는 ‘내란음모죄’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나왔다. 1997년, IMF 외환위기로 나라가 흔들릴 때, 그 혼돈의 시기에 그는 네 번째 도전을 시작한다. 누구는 ‘집요하다’ 했고, 누구는 ‘위험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를 지지한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그해 대선은 단순한 선거가 아니었다. 군사정권의 유산과 민간 정치의 싸움, 기득권과 시민사회의 대결, 과거와 미래의 분기점이었다. 한쪽에는 ‘경제 대통령’을 자처한 이회창이 있었다. 전 대법관, 국무총리, 군 출신 아들 논란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상징했.. 우리사회 이야기 2025. 3. 23. 더보기 ›› 서울대가 대한민국을 망치고 있다 – 학벌 공화국의 실체 요즘 뉴스 보면 참 어이없는 일들이 많지? 그런데 가만 보면, 대한민국 사회의 문제를 파헤칠 때마다 꼭 등장하는 단어가 있어. 바로 서울대.얼마 전에 서울대 과잠바를 입은 학생들이 윤석열 탄핵 반대 시위를 했다는 소식이 있었어.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딱히 이유가 있는것 같지 않았어. "우리는 서울대생이니까."하… 대한민국이 서울대 공화국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더라.이 나라의 교육, 출생률, 청소년 자살률, 부동산 문제까지—모든 게 서울대와 연결된다는 그런 느낌.오늘은 그걸 한 번 파헤쳐 보려고 해.서울대가 대한민국 교육을 망치는 이유대한민국에서 교육은 뭐야?단순히 지식을 배우는 게 아니라, 서울대를 가기 위한 경쟁 시스템이 되어버렸어.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되는 'SKY 아니면 실패' 프레임,.. 우리사회 이야기 2025. 3. 18. 더보기 ›› 나의 편파적인 한국현대사 - 나의 대통령 ④ 김영삼 1. 3당 합당 – 민주화 세력의 배신인가, 현실적 선택인가?1990년 1월,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합의가 이루어졌다. 김영삼이 노태우·김종필과 손을 잡고 3당 합당을 단행하면서,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1987년 대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단일화에 실패하며 노태우에게 정권을 내준 이후, 야권이 다시 집권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바로 ‘군 세력과의 결합’이었다.김영삼은 이 결정을 두고 "독재를 끝내고 문민정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지만, 김대중을 비롯한 많은 민주화 세력들은 이를 ‘배신’이라 보았다. 김대중은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라고 말하며 김영삼의 선택을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이 합당으로 인해 민주화 세력은 분열되었고, 한국 정치의 지역 구도는 더욱 공고해졌.. 우리사회 이야기 2025. 3. 18. 더보기 ›› 나의 편파적인 한국현대사 - 나의 대통령 ③ 노태우 1. 1987년 대선 – 6월 항쟁 이후 다시 군인이 대통령이 되다1987년 대한민국은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6월 항쟁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시민들은 더 이상 군사정권의 억압을 용인할 수 없었고, 전국적인 시위는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다. 이는 6월 민주항쟁이 만들어낸 가장 큰 성과였지만, 문제는 새로운 정치 체제 아래에서 또다시 군 출신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는 점이었다.대선이 다가오자 신군부 출신이자 전두환의 후계자로 지목된 노태우가 민정당 후보로 나섰다. 그는 “보통사람의 시대”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며 본인의 군 출신 경력을 희석하려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12.12 군사반란과 5.18 학살을 함께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당시 야권은 김영삼과 김대중이 끝내 단일화에 실패.. 우리사회 이야기 2025. 3. 17. 더보기 ›› 나의 편파적인 한국현대사 - 나의 대통령 ② 전두환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 그리고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걸림돌"1. 12.12 군사반란 – ‘구국의 영웅’을 자처한 쿠데타 세력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후, 대한민국은 잠시나마 권력의 공백 상태를 맞이했다. 하지만 이 틈을 노리고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조직적이고 치밀한 군사반란이 벌어졌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을 필두로 한 신군부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고 군 지휘권을 장악한 뒤, 서울 시내에 군을 배치하여 쿠데타를 완성했다.그들은 스스로를 "구국의 영웅"이라 포장하며, 박정희의 죽음 이후 "혼란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 주장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철저한 권력 탈취였다. 국군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하나회를 중심으.. 우리사회 이야기 2025. 3. 17. 더보기 ›› 728x90 LIST 이전 1 2 3 4 5 6 ··· 10 다음